책 이야기/인문2009.12.06 15:40
 

정재영<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풀빛.   (서양철학일반, 2009.11.02. ~ 2009.11.07.)
정재영<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풀빛.   (서양철학일반, 2009.11.09. ~ 2009.12.06.)

모든 자물쇠를 다 열 수 있는 만능 키같이 모든 철학 문제를 다 풀 수 있는 만능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는 그것을 도그마라고 불렀다.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中, p. 279~280.

모든 이념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이 평범하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이념의 옷에 인간을 억지로 맞출 때, 이념은 괴물이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이 괴물의 노예로 전락한다.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中, p. 348.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도시를 디자인하다?


무슨 책의 제목일까. 겉으로 슥 보고 지나가기에는 한 때 유행하던 도시공학 서적이라 보일 수도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결국 철학책이다. 오히려 본문을 읽어보게 되면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도시를 매개삼아 철학여행을 떠나는 책이다. 오히려 '철학, 여행을 떠나다' 와 같은 제목을 붙여주고 싶지만 느낌은 조금 애매하려나.

어찌보면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그 도시에서 철학이 탄생한 것이지, 실제로 철학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는 없지 않을까? 실제로도 그렇다. 저자는 철학이 도시를 디자인했다는 공간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디자인함으로써 우리가 그 시간대로 빠져들게하는 역할을 함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아테네가 고대를 대표하고 피렌체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듯 말이다. 물론 도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결론은 공간적인 배경을 시간적인 배경으로, 저자가 탁월하게 전환한다는 것이다.


간략하면서 묘하고, 어려우나 재미있다.

묘하다. 중학교 도덕,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많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시간 순서대로 해설하고 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으로 현재서부터 시간을 거꾸로 올라감으로써, 현재를 지배하는 철학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찾아들어가고 있다. 생각의 뿌리를 거꾸로 찾아들어가는 기법은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대중적인 철학 책에서 쓰이는 것은 의아하게도 늦게 도입이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일까...

묘하다는 느낌을 시간적인 요소에만 한정할 수가 없다. 도시를 선정하여 그 시대의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거기서 철학자를 불러낸다. 그리고 한 철학자와 그 철학에 대한 설명이 모자라다고 생각할 때 저자는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뿐 아니라 저 멀리에서 연관된 사람들을 소환한다. 그래서 처음엔 간략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는 묘해질 뿐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진달까.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있다. 어려운데! 사실 이것은 주인장이 철학에 조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 아마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은 없고 재미만 남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지금, 당신의 철학을 되새겨보라.

철학의 뿌리는 무궁무진하다.


결과적으로 뿌리를 향해 찾아가는 기법 그 자체로 이 책은 목적이 분명한 책이 된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행의 최종 목표를 유럽 철학을 이해하는 데 두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정했다. 이제 물어보자. 목표는 이루어졌는가?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中, p. 512.


이 물음에 답을 해보자. 이 책은 저 물음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들려주는 것이다. 책 내내 상대적인 면을 지지하고, 절대화에 따른 오류와 선입견을 철저히 두려워하는 저자의 소견을 들을 수 있다. 맨 위에 뽑아 인용해놓은 두 문장이 그 답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이 물음에 자신의 답을 내놓아 보자.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생각이 뭔지, 자신의 철학이 뭐였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지기 십상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칸트 철학을 두고 생각의 물줄기가 모이는 저수지라는 표현을 쓴다. 이 책이 그토록 거대한 저수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당신의 생각, 그리고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현재의 철학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샘이 되리라는 것은 두 말할 것 없을 것이다.
Posted by nopi
책 이야기/인문2009.11.13 22:47

황광우<철학콘서트>웅진지식하우스.   (교양철학, 2009.05.03. ~ 2009.05.25.)

자연과학은 20대에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생의 깊이만큼만 이해된다. 21세기의 현대인이 여전히 플라톤과 공자로부터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철학콘서트』中, p. 15.


철학 + 콘서트??? 

어렸을 적 서점에서 지금은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다. 과학에 콘서트라... 어떤 내용이길래 '콘서트'라는 표현을 썼을까 싶어 (그 때까지만해도) 과학에 흥미를 가졌던 소년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책을 냉큼 집어 그 날로 다 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런 의도였을까? 대중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과학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콘서트' 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 과학 전반에 걸쳐 다양한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내었기 때문에 그런건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10년 가까이 지나서 내가 읽은 책 중에 '콘서트'가 하나 더 늘었다. 다름아닌 <철학콘서트>. 10년 전에 호기심으로 <과학콘서트>를 집었듯이, 이제는 철학과 인문학에 호기심을 가진 청년이 되어 혹해서 집었던 것 같다. 그럼 이 책은 어떤 책이길래...?


넓다! 

콘서트는 항상 다양한 기대를 가지게 하기 마련이다. 사진은 베토벤 바이러스.


콘서트에는 다들 가보셨는지? 가수들은 콘서트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한다. 앨범으로 나온 노래들도 불러야 할 뿐 아니라 가끔씩은 그 노래들을 다른 버전으로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하고, 다른 가수들의 노래도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 그 뿐만이랴. 마술에 연극에 영상편지까지... 정말로 많은 컨텐츠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감히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였듯, 이 책의 큰 자랑거리는 역시 넓은 범위의 내용이다. 윤리 책에서 다루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서양철학 기초에서부터 경제학에서나 다룰 법한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까지 한 책에서 다룬 적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예수같이 '성인'으로 인식되어 쉽게 '철학자'로 인식이 되지 않는 분들까지 '넓은 범위의 철학'으로 다루고 있다.


유쾌, 상쾌. 그리고... 통쾌?

'철학책'-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내가 가지던 선입견을 예로 들어보자. 도-저히 안 되겠어서 때려친 -_-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알 수 없는 용어정리에서부터 시작해서 딱딱한 논리전개에 이르기까지, 철학책은 어렵다는 생각을 받았다. 비단 칸트 뿐만은 아닐 것이다. 철학이라는 것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를 정의하고, 계속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감성보다는 논리적으로 전달해야 하기에 대부분의 철학책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임마누엘 칸트. 그의 '순수이성비판'은 내가 철학 공부를 때려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이 주목받는 큰 특징은 부드러운 문체다. 철학책에서 구어체가 자연스레 활용된 예는 많이 볼 수 없다. 친구와 대화를 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철학자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더욱 이해가 잘 된달까. 물론 철학자들이 내는 철학책과 그 철학에 대한 해설서에 큰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부드럽게 설명하는 책은 해설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철학 서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부드러운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에 반하는 단점도 있긴 하다. 신랄하게 비판하는 서적이 아니고 현자들의 사상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유보하는 서적이다 보니, 통쾌한 맛이 없달까. 사실 이는 각각의 철학을 독자가 따져 물을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맵지도 달지도 않은 떡볶이를 먹는 듯한 밍밍한 느낌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내버려뒀으면 단점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었던 것을 저자는 화두를 던지면서 극복하고 있다.

그래서 루소와 노자를 비교하면서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게 해주고, 소크라테스가 무지를 가르치되 앎을 주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들을 얼마나 당황스럽게 만드는지 혹은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를 스스로 따져 묻게 한다.
- 추천의 글 中, p. 8.

이러한 아이디어가 화두가 되어 독자가 철학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저자의 뛰어난 능력은 아닐지.


누구를 위한 책인가 

누군가 이 책을 두고 신랄하게 비평한 걸 본 적이 있다. 너무 쉽게 쓴 것 아니냐고. '고작' 청소년을 위한 교양서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이름은 거창하게 철학 '콘서트'라고 붙인거 아니냐는 식에 비판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잘난 사람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이가 자신의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얘기를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과연 자신은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철학을 할 수 있었는지?

물론 이 책은 청소년의 교양서적으로 쓰이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철학을 처음 공부하려는, 처음 훈련하려는 사람에게도 쓰이기 좋다. 조금 과격한 말을 하자면 고등학교 때 윤리 공부 제법 안 한 분들에게도 딱 좋다고 하겠다. 그만큼 기초에 튼실한, 기초에 튼실하기에 가치를 인정 받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보니 이 책의 2권이 나왔다는 소식이 있었다(제법 된 것 같기도 하지만...). 2권도 기대를 하게 만든다. 내용이나 목차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우리의 분류와 인식에 의하면)철학의 근간에 충실한 1권에 비하면 조금 더 발전된 철학, 복잡한 철학을 다루지 않을까 싶다. 쉽게 철학을 대중에게! 라는 모토가 잘 지켜지길 빌면서 2권을 구입해야겠다.

Posted by nopi
책 이야기/인문2009.06.08 03:03
남성과 여성의 착각에 관한 잡학사전
카린 헤르처, 크리스티네 볼프룸 지음, 권세훈 옮김<남성과 여성의 착각에 관한 잡학사전>을유문화사.   (인문학 일반)

결국 이성간의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100%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남성과 여성의 착각에 관한 잡학사전』中, 소개글.


+

렸을 적 일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보게 된 잡지에는, 예쁜 누님들이 가여운 학생들을 위해 헐벗고 나서는 모습들이 실렸었다.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했던가. 그 즈음을 기점으로 나의 친구들은 나를 쾌락의 영상들로 인도했으니, 아마도 동물의 본능으로 표현되는 그 욕구가 무자비하게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그 시점부터였을까 싶다.

+

로부터 10여년이 지나도 성욕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듯한 욕구와는 다르게, 성(性)에 대한 무지는 여전하기만 했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중학생 고등학생보다도 더 짧은 지식을 가진 것은 둘째치고, 어렸을적부터 가져온 환타지가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인정한다. <남성과 여성의 착각에 관한 잡학사전>을 집을 때는 그런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단순히 재미 이상으로 다가온 책이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혹시 아는가? 여자는 결코 남자보다 수학을 못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수학을 더 잘 한다는 신념은 오래도록 지켜져왔고, 아마 당분간은 깨지지 않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차이, 특히 남녀간 차이를 단순히 성에 한해서만 다루지 않고 사회적 분야에서부터 감정,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는 책, 그래서 이 책이 '잡학사전'인 것이다.

물론 뒷부분은 성적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성적 판타지라는 부제가 무색하리만큼 나의 환타지는 깨져버리고 말았다. 섹스에서부터 페니스까지, 적나라한 항목들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인 것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환타지는 찾기 어려웠다. 사진은 성적 환타지를 찾아 떠나는 섹스 테라피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 '숏버스'



여자와 남자는 매우 다르다. 그걸 다 안 다고 착각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누가 모르느냐는거지. 어떻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사실만을 나열해서인지 그렇게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었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매우 많기에 의외로 지루한 곳도 상당히 많았다. 되돌아보니 처음에 책을 집었을 때의 음흉한 의도와는 아쉽게도 거리가 먼 책이었다. 그저 성역할에 대한 미디어와 사회 구성원들의 '이미지'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 데 만족하자.
http://jennifer-decker.tistory.com2009-06-07T17:45:300.3610
Posted by nopi
책 이야기/인문2009.05.31 22:25

이재영,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한티미디어.   (인문교양, 2009.01.24. ~ 2009.01.24.)

사실 첫 문장을 씀으로써 시작되는 지적 여행의 출발은 바로 종이에서 시작된다.
--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中, p. 127.




'글쓰기'는 인간의 지식을 발달시킨 최고의 도구였다. 인류의 지식이 급격히 늘어난 시절의 초창기부터 얼마 전까지는 그 말이 누구에게나 납득이 갔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텍스트 및 문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에서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출판을 e-book으로 할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그런 말을 긴가민가 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절반이요, 부인하는 사람이 절반인 시절이 되었다. 왜 저자가 케케묵은 아날로그를 갑자기 꺼내는 것일까. 단순히 디지털 시대에서 옛 향수를 떠올리는 아날로그 아이템들이 인기를 몰고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장점은 분명하다. 어디서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양도 무수히 많으며, 다시 찾기에도 편리하다. 그러나 '유익한 정보를 걸러내는 힘'이 약해진다는 단점은 장점의 뒤에 숨어버리게 되었다. 수많은 자료를 얻었지만, 실제로 뭔가 쓰려고 하면 어떤 것을 써야 할 지 모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다반사. 가끔은 디지털 아이템을 가지고 뭔가 찾으려 하다 보면 어느샌가 딴길로 샐 때도 있다. 이럴 때야말로 필요한 것이 노트다.

사실은 노트가 아니어도 좋다. 메모라도 좋다. 어딘가 적기만 하면 된다. 적음으로써 자신의 '(유용한)지식이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적는 행위 그 자체는 디지털 매체와는 다르게도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 더욱 효율적인 지식의 정리가 완성된다. 저자는 이를 '탁월함' 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만드는 일, 그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p. 75)'
'탁월함'에는 반성의 의미도 들어간다. 노트에 적어놓은 메모를 보며 이 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다시 볼 때마다 이 생각들이 맞는지, 다른 의견들은 어떨지 등등 여러가지를 보고 있다. 나 자신을 객관화 하여 반성하게 하는 도구야말로 노트인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열변을 토해놓고 마무리가 안 좋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의 구성을 하고 있긴 하다. 갑자기 뜬금없이 다중 지능 이야기를 하면서, 책의 전체 주제와는 맞지 않는 구성이 난데없이 들어가긴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의의가 있다.

'종이에는 지식이 자란다.'라고 했다. 메모는 물론이거니와, 들고 다니며 남들과 토론하기에도 가장 용이한 매체가 종이이다. 그리고 그 매체의 묶음이 바로 노트가 된다. 글 뿐 아니라 그림과 사진까지, 저자의 표현대로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하이브리드 매체인 노트가 여러분들을 탁월하게 만들 것이다.
http://jennifer-decker.tistory.com2009-05-31T13:17:000.31010
Posted by no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