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시/에세이/기행'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13 유럽여행 재밌게 느끼기.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2)
  2. 2009.08.13 여행을 사랑하세요? - 내 안의 여행유전자 (1)


빌 브라이슨, 권상미 옮김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21세기북스.   (유럽여행, 2008.10.01. ~ 2008.10.07.)

그러면서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 킬킬대고 웃었다. 비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낯선 나라의 텅 빈 음식점에서 1인분에 25달러나 하는 피자를 기다리며 혼자 앉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中, p. 191.


저번에 쓴 <오페라의 유령> 리뷰를 쓰다보니 생각난 책이다. 아마도 이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의 유럽여행은 극도로 미화된 상태로 남아있었을텐데.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알았듯이, 나도 이 책을 읽고 내 여행의 실체를 파악해버린 것만 같다.


유럽 - 배낭여행의 시작

유럽은 배낭여행 초심자가 가보는 기본 코스가 되어버렸다. 동화책에서만 읽던 성을 볼 수도 있을뿐더러, 아름다운 알프스와 지중해의 태양, 각지에서 유럽을 향해 여행온 수많은 여행자와 더럽게 비싼 물가까지 한 번에 체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열흘이든 20일이든 50이든, 뭐 대부분은 한 달을 가는 것 같지만 여튼 그런 짧은 시간 안에 수없이 많은 정보를 눈에 담아가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어디에 기차는 공짜라서 좋았고, 어디에 산은 트래킹했더니 멋있었으며, 사람이 많은 곳은 역시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둥. 그렇다. 대부분은 유럽에, 그리고 유럽여행에 환상을 남긴 채로 오고야 마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녀온 유럽은 피요르드 해안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만큼 아름다웠고, 제네바에서 먹은 달팽이 요리처럼 비싼 값을 낼만 했으며, 베네치아의 태양빛이 운하에 반사되는 강렬함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바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환상을 깨다

그는 말했다.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듯이! 그리고 돈을 받고 표를 내주었다. 스웨덴의 자살률이 왜 그리 높은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中, p. 193.

Damn it!
이 한 마디를 왜 나는 하지 못했나.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빌 브라이슨과 다른 여행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빌 브라이슨은 여행을 되새기며 항상 툴툴댄다. 어느 곳에서는 말이 안 통한다고, 어느 곳에서는 호텔이 더럽고 비싸다고, 어느 곳에서는 종업원이 불친절하고 음식이 맛없다고. 당연한 것 아닌가! 여행을 다니면서 매순간 매번이 다 좋을 수는 없었을텐데!

빌 브라이슨이 툴툴대는 정도는 이제 삐딱함으로 옮겨간다. 스웨덴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알겠다는 중, 이탈리아 사람들은 옷도 벗지 않고 섹스를 하는 법을 고안해낸 것 같다는 둥, 가이드북에 나오는 언어 부록이 "7시, 10시, 10시 반, 정오, 자정, 오늘, 내일 그리고 내일 모레 목욕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실래요?" 따위라는 둥.

빌 브라이슨은 '네오'다. 나의 환상 혹은 환상적인 여행 기억을 없애주는 네오.

물론 이런 환상적인 기억을 완전히 지우랴마는...



그 속의 매력을 찾아서

5년 후에 다시 소피아에 가본다면 피자헛과 로라 애슐리가 즐비하고 거리에는 BMW가 넘쳐나며,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리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추호도 비난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변하기 전에 그곳에 다녀왔다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中, p. 376.

툴툴대기만 하는 책이라면 당연히 책은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이 그럼에도 재밌는 이유는 바로 신랄한 풍자와 유머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있는 여행기를 쓰는 작가이다.' 라는 말처럼, 빌 브라이슨의 유머는 이 책을 여행 정보를 소개하는 가이드 북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기행문이라기 보다는 여행 재미를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다. 빌 브라이슨의 또 하나의 매력은 삐딱함 속에 숨어있는 따뜻함이다(출판사 분들은 이런 문구를 정말 잘 생각해냈다!). 외국 도시의 낯선 거리를 한가하게 산책하는 것을 상상하며 매일 저녁 새로운 도시에 가보면서 평생을 살고 싶다던가, 교회 계단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매일같이 이웃들과 아름다운 별빛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싶다는 말은 따스함을 가지지 않고서야 나오지 못할 표현이리라.


진정으로 이 책은 유럽여행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는 책이다.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아닌 상상을 하게 해준달까? 다녀온 사람에게는 맞아, 하는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이를 느끼도록 번역해주신 옮긴이 역시 대단한 감성과 센스를 가진 분이리라.

아, 빌 브라이슨은 진정한 '네오'다. 단편적이었던 내 기억을 재밌게 만들어 주는.
Posted by nopi
내 안의 여행유전자
이진주, <내 안의 여행유전자>, 가치창조.   (세계여행, 2009.08.02. ~ 2009.08.03.)

"걱정마세요, 괜찮아요, 저 여행자 보험 들었어요!"
-- 『내 안의 여행유전자』中, p. 182.





"여행 좋아하세요?"
"네"
"재밌는 거 들려주세요!"
"..."


개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자랑스레 떠벌린 것까진 좋았는데, 막상 그 얘기를 해달라 하니 말문이 탁 막혀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 사실 어떻게 그 많은 느낌, 감동,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블로그에 올라온 글 모음집(많은 첨삭이 있었겠지만)인 이 책을 보고, 여행 정보를 흘깃 얻어가시려 한 분들은 잘못 찾아오셨다. 딱딱한 여행 서적이나 기행문이 아닌, 가끔은 시처럼, 다시 보면 수필처럼 보이는 이 글이야말로 소개팅에서 내가 하지 못한 얘기들을 풀어내는 감성과 감정이 담긴 글이다. 보는 이들이 자연스레 '훌러덩' 하고 책을 넘길만큼 가벼운 내용이지만서도, 계속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경험을 되살리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이게 만든다. 실제 직업이 방송 작가이신만큼 뛰어난 글솜씨도 글솜씨지만, 글을 다시 보게 만드는 평범하고도 독특한 사진들마저...


오늘 <무릎팍도사>에 나온 한비야 선생님을 보고서야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한비야 선생님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방송을 보고서야 이 글과 다른 점이 조금씩 떠올랐기 때문이랄까. 사실 이 책을 표현할 때 적절한 말을 찾고 있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감동'이라는 단어가 왜 조금 꺼려질까... 라고 생각했더니 그것은 한비야 선생님의 글이 더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

렇다. 한없는 감동을 주는 책도, 정보를 전달하는 유용한 내용의 책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책들에 비해... 이런 표현이 어울릴진 모르겠으나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 했달까? 엑스터시를 추구한다기 보다는 순정을 추구하는, 그런 책이다. '인간미' 라는 말이 더 적합하려나?


책장을 다 닫기도 전부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지만, 실은 부럽기 그지 없었다. 현재의 위치에 매여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언젠가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려는 것 같다. 꾸밈없는 나의 이야기로 수필 같기도 시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꿈같은 소설같기도 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여행기로 말이다.






http://jennifer-decker.tistory.com2009-08-12T18:27:160.31010
Posted by no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