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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예술/대중문화

비틀어서 그림 읽기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학고재.   (예술이야기, 2009.11.19. ~ 2009.11.21.)


오필리어. 미친 여자, 흔히 말하는 '미친년' 코드가 다 들어 있는 매혹적인 그림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中, p. 37.


이 책을 처음 본 건 사실 책이 아니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햄릿>에 나오는 비련의 여인 오필리어를 그린 그림을 보고 눈이 거기에 맞춰졌을 뿐이다. 그 그림 한 장면에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김치샐러드 라는 블로거가 올린 글을 읽고 있었다.

Ophelia, Sir John Everett Millais. (Tate Gallery, London/Art Resource, NY) 출처 : www.artmagick.com


어라, 그리고 그의 글이 책으로 나올 줄이야.


미술, 벽.

나는 그림을 볼 줄 모른다. 예술 전체적으로도 젬병이지만 미술은 더하다. 아무래도 어려웠던 것이겠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 과목 실기에서 A를 받은게 하나 있나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미술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정말 0.000001 % 정도나 될까 말까 한 정도일 것이다.

그나마 미술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생겼던건 유럽여행이었던 것 같다. 난생 처음보는 스타일의 건물들과 오랜 양식이 남아있는 마을, 성 같은 것도 멋있었고 알프스 산맥과 북해와 지중해도 신기했다. 그리고 책에서나 나오던 것들을 전시해둔 무시무시한 규모의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모르지만, 어디서 본 것은 친숙하잖는가.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도 미술은 여전히 벽이었다. 내가 가서 느낀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아 이게 유명한 그거구나' 라며 찍어온 사진 몇 장이 달랑 내가 유럽에서 미술에 잠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부였을 뿐이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있던 렘브란트의 자화상 중 하나. 내가 보기엔 그냥 늙은이일 뿐이었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책 읽어주는 남자도 아니고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이라니? 이 책의 독특한 구성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보통의 명화 해설서는 그림이 있고, 그에 따르는 장문의 해설이 있다. 그에 대해 누구는 어떻게 말했으며, 어떤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고, 어느 화풍에 들어가며 누구랑 비슷한데다 주제는 이러하다- 는 장문의 글을 보고 있으면 내가 글을 보는건지 그림을 보는건지 그림의 해설을 보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해설도 좋지만, 전달에는 역시 직관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이 글도 반성할 일이다.)

명화? 내가 보여줄게!


젠장, 이 책은 미쳤다! 좋은 의미로 말하면 파격적인 형식으로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고, 나쁜 의미로 말하면 '얜 뭐야' 라는 식의 책인 것이다. 그림을 그림-그림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스틸샷도 있고 광고도 등장한다. 중요한 건 그것들이 다 진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코미디 요소가 다분한 장면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으로 설명하고 있는데다가, 두 화자의 대화체로 진행되는 해설이라니, 어찌 이렇게 신선할수가. 거기다가 화자가 사람도 아니고 물고기 한 마리와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아닌가.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를 책으로 엮어낸, 정형화된 형식과는 거리가 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딱딱하지 않아 좋다. 어쩌면 미술 전공이 아닌 저자-문예창작과를 졸업-의 시각이기에 더욱 신선할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할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에게 '이렇게 읽어봐' 라고 툭툭 던져주는 마디들이 반갑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마냥 어렵게만 볼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만드는 좋은 자극제다.

어떤 책이든 이런 종류의 책은 많은 비평을 받게 마련이다. 저자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주관적이다 못해 독선적일 수도 있을 정도랄까. 특히 자신의 감정이 복잡할 때 그 심정을 담은 작품과 해설을 위주로 책을 구성했기 때문에, 많은 그림의 해설이 비관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사실이다. 다분히 주관적인 해설을 무작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다.


상상력이 널 구할거야

셔츠를 찾으려고 옷장을 열다가 사자를 발견하는 마술과 같은 놀라움
- 프리다 칼로,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中 p. 231」에서 일부 편집.

글쓴이의 해석이 정통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더군다나 해설의 방법도 파격적이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명화들에 대한 인식이 더 쉬워지는 것이다.

'상상력이 널 구할거야'

글쓴이의 좌우명이라 한다. 좌우명처럼 책에서도 위에 언급한 프리다 칼로가 말한 문장을 좋아한다 했다. 그렇다. 미술 보는데 어려울 거 뭐 있나. 좋을대로 상상하면 되는거다. 주관적이면 어떠한가, 해석하는 사람 나름인것이 예술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