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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글들과 작은 이야기

박찬호, 서울대생에게 꿈을 이야기하다.

박찬호 선수가 서울대학교에 강연을 왔습니다.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으니 그 사이에 많은 기사가 떴더군요. 현장에서 노트북으로 작성하시고 바로 송고하시는 기자 분들도 계셨던 것 같으니 뭐 놀라울 것도 아니지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센터는 사실 스포츠 '산업'에 대한 얘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만, 실질적인 내용은 박찬호 선수의 삶에 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니 제가 직접 듣고 느낀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기사가 작성된 것도 많더라구요. 역시 언론의 힘은 여러 의미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끄적이는 글은 기자의 눈으로, 기사를 위한 글과는 다른 그저 팬으로써 본 이야기만 살짝 얘기하려 합니다.



기사를 보니 약 천 명 정도의 학생이 왔다고 합니다. 물론 조금 과장된 수치인 것 같군요.


박찬호, 이런 사람이었어?

박찬호 선수는 메이저리그(Major League)를 주저없이 '대단한 리그'라고 말을 합니다. 수많은 마이너리그(Minor League) 팀들과 팜(Farm) 시스템을 갖춘 메이저리그야말로 리그 뿐 아니라 엄청난 산업, 시스템으로써의 역할을 다한다는 얘기죠. 뉴욕 양키즈의 경우 다른 팀 팬들이 싫어하는 팀을 꼽으면 7~80%로 꼽는 팀이지만, 올 월드시리즈의 경우처럼 호불호와 상관없이 대단한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니 '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래서 언론에서 나쁘게 다루는 걸 관심으로 받아들여요 하하하" 라는 말에서 박찬호 선수가 은근히 많은 스트레스도 받았고, 지금은 여유도 찾았구나- 라는걸 느끼게 되었죠.

운동선수가 말을 잘한다- 라고 생각하고 놀란 건 역시 선입견이겠죠? 그만큼 박찬호 선수는 뛰어난 언변을 보여줬습니다. 단순히 말을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편하게 농담도 잘 던지고 속된 말로 웃긴 소리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사를 살펴볼까요? 스포츠 조선은 이렇게 기사를 냈습니다.
첫 강연이지만 중간중간 농담을 섞으며 막히지 않는 입담으로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뛰어난 강연 실력을 보였다. 말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지자 박찬호는 "그렇게 박수를 많이 치시면 내가 너무 잘하는 것 같이 생각되니까 치지 말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자신이 거쳐온 팀들에 대한 단상을 하나하나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LA 다저스를 마음의 고향으로 정의했고, 텍사스는 부를 축적하게 해준 팀, 샌디에이고는 가족과 같은 팀, 필라델피아는 기회가 된다면 계속 뛰고 싶은 팀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랬습니다.
  "텍사스 시절은... 부를 축적하고 ㅋㅋㅋ"
  "저의 후손들이 감사해야할 팀인 것 같아요"
  "뉴욕 메츠는.. 뭐... 정은 없네요. 어차피 할 말도 없고..."
  "2008년에 메츠 상대로 잘 던졌더니 단장이 뭔일 생겼냐고 묻더라구요"
이런 소리를 섞어가니 좌중이 웃을 수 밖에요 ㅎㅎ

박찬호 선수는 운동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재치와 유머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공주에서 나왔습니다 (자꾸 박찬호 선수가 시골이라고 해서 저도 모르게 '아니 그래도..' 란 소릴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게다가 야구도 좋아하지요. 그런고로 박찬호 선수의 어렸을 적 이야기라거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 옆학교이자 박찬호 선수의 모교인 공주고등학교 이야기 등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을 때 '후원회 아저씨들'과 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해서 야구를 시작했단 얘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타고 난 선수였나봅니다 ㅎㅎ. 박찬호 선수는
  "아저씨들이랑 경기하면 고기도 먹고"
  "애들이 모아 준 라면도 다 먹고"
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초등학교가 강팀이 되어 다른 팀들이 찾아오니 "산업도 발전하고, 고기도 많이 먹고 벌써 일석이조 아니냐" 란 농담과 함께 나중엔 시험을 봤더니 계속 야구를 해야할 성적이 나왔다면서 너스레도 떨었습니다.


역시 나의 영웅. 멋있다!!!

중간에 질문 시간을 가지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질문에 관해서는 뉴스를 참조하세요.). 박찬호 선수의 꿈과 여정에 관한 이야기였죠.

고3때 청소년대표로 미국에 갔을 때 LA 다저스 경기를 관람했다는 얘기는 기사에도 떴을 겁니다. 아마 그걸 보고 꿈을 키웠다고 했겠죠. 제가 필기해온 내용은 이렇습니다.
돈이 없어서 다저스타디움 맨 위에서 보니까 무지하게 크더라. 사람들도 작게 보여서일까, 유니버설 스튜디오 보고 왔더니 여기도 영화찍는 것의 일부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맨 위에서 봤다는 것이 야구의 전부를 보게 되어, 결국 나의 꿈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마운드에서 연습투구라도 하고 싶었다."
과연 2년 후에 그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리라고 생각을 했을까요 ㅎㅎ.


기사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왕따' 부분입니다. 반은 진실일 수도 있지만 반은 농담일 얘기를 완전 심각하게 써놨더라구요. 심지어 어느 기사는 '부모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으로 왜곡도 해놨더군요. 실제로는 모든 성인을 다 얘기했는데 말입니다.

여튼,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더니 왕따 비스무리하게 되었다- 고 했더랬죠. 나중에 이성을 생각하게 되니 야구가 더 잘 되고, 술도 한 잔 해봤더니 일찍 잘 수도 있었다는 말로 너스레를 떤 후 그가 한 말은 최고의 명언입니다.
술, 담배, 여자를 멀리했던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 아니라, 신념과 그 신념을 지켜나가는 절제가 성공의 원동력이다.
캬. 역시 내 영웅은 다릅니다.


그를 바꾼 것 - 가족, 그리고 마지막.

지금의 박찬호 선수가 만들어진 것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해준 소중한 사람들과,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깨닫게 해준 '마지막' 이라는 단어입니다.

소중한 사람들은 여럿 있지요. 2008년 LA 다저스와 계약이 취소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박찬호 선수가 생각했던 것은 대표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았고, 정이 들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담감을 가지고 은퇴의 기로에 섰을 때 도와준 사람은 피터 오말리 前 LA 다저스 구단주였죠. 하지만 최고로 소중한 사람은 역시 그의 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출혈이 있었을 때, 무리하게 등판하려고 했던 박찬호 선수에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동료였던 우디 윌리엄스는 따끔한 충고를 해줬다고 합니다. "'가족을 생각한다면 지금 한 경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 일단 네가 몸을 챙기고 오랬동안 그 사람들에게 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라.' 그 때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것을 실감했다." 이런 조언은 '마지막' 이라는 단어에서도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2007년 풀타임 마이너리거 생활을 보내고 은퇴의 기로에 서있었을 때, 팬들의 응원 메시지를 보고 '나는 끝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는 걸 실감하고 마지막을 불태우려고 했답니다. 스프링캠프에서 불태운 열정이 채 식기도 전에 마이너리거로 다시 돌아가란 통보를 받았을 때에도 좌절을 한 번 경험했다는 그는 올 시즌 중반에 부진했을 때에도 은퇴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때 오말리씨가 조언을 해줬다고 하는데,
네 아이가 아플 때를 생각해봐라. 가족을 지켜나가는 것보다 더 큰 일 있겠나. 그거에 비하면 지금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도 옳겠지만 그건 별 것 아니다. 걱정하지 마라.
어때요, 힘이 날만 한가요 ㅎㅎ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던졌더니 훨씬 성적이 좋아져서, 이제는 자신감을 다시 회복한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습니다.


학업과 운동의 병행이 요원한 현실.

마지막 주제는 미국 스포츠와 한국 스포츠의 비교였습니다. 비교적 앞의 두 주제보다 짧은 시간동안 진행됐네요. 결론은 이겁니다. 미국에는 법대 나오거나 경영을 전공하거나 공부를 병행한 선수들이 많은데, 한국은 왜 적은 걸까 라는 겁니다. 비단 운동선수뿐만이 아닙니다. "운동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고, 공부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을터이니,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지론을 펼쳐보였네요. 심히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박찬호 선수의 강연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발악을 해서 박찬호 선수에게 질문한게 하나 있었는데... 질문한 내용은 나중에 올릴게요. 덕분에 저는 대학신문 기자와 간단한 인터뷰도 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아효, 제가 무슨 글을 쓰고 있었는지... 은근히 필기해온 내용이 많아서 요약도 어렵네요. -_-

질문 내용을 거의 다 적어왔으니, 그건 다음 글로 넘기고 여기서 잘라야겠습니다 :$



P.S. 오늘 강연을 다룬 기사들을 몇 개 링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