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소설2010.02.16 08:15

가스통 르루, 최인자 옮김
<오페라의 유령>문학동네.   (프랑스소설, 2006.06.26.)

"크리스틴, 당신은 나를 사랑해야 하오!"
그러자 슬픔에 가득 찬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흘리는 듯,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나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순간 라울의 심장은 영원히 멈추는 듯했다.
-- 『오페라의 유령』中, p. 54.


2006년이다. 첫 유럽여행인지라 가슴이 설레었던 것도 잠시, 어지간하면 그런 고민을 안 하겠지만 가격이 제일 싼 비행기 표를 구한다고 구한 항공편이 베트남 항공이었기 때문에, 유럽까지 가는 그 긴 시간동안 난 뭘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유럽여행 가는데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골랐던 책이 바로 이 <오페라의 유령> 이었다.

간만에 옛 생각을 하다보니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다시 읽어봐도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이야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공포 소설? 추리 소설? 연애 소설?

소설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 대체로 하나의 분위기만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하나의 '장르' 가 결정이 되면 그 소설은 '장르' 안에서 가지는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띈다는 말이다. 소설을 분류할 때 연애소설, 추리소설 같은 장르로 나누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런 점에서 모호하다. 이 모호함은 결국 여러 장르의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미스테리 소설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이었지만, 책을 덮고 난 후부터 누가 그런 소리를 했나 찾아서 때려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크리스틴 다에와 라울 샤니, 또다른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의 유령> 에서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그 중 둘이 바로 아련한 사랑을 나누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 다에와 그녀의 연인 라울 샤니 자작.

이 둘울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다른 연애소설과 같은 플롯을 지니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서로를 알아왔으나 현실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사랑임을 알고 슬퍼하는 모습, 그리고 강력한 반대에 빠진 그들의 사랑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나는 주저않고 크리스틴 다에와 라울 샤니를 또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소설은 정말로 다양하다. 그렇지만 비극적 스토리, 아름다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문호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두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련한 연애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


아름다운 두 연인의 이야기가 전부였다면 이 책은 아름답지만, 아주 특출난 소설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페라의 유령의 존재는 더욱 더 특별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소설은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인 모습을 보인다. 연애소설에다 공포와 미스테리가 적절히 섞인 듯한 이 소설은 결국 오페라의 유령에 의해 완성된다.

오페라의 유령은 연인의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꾼으로, 오페라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일들의 주모자로, 그리고 광기어린 사랑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미치광이로 등장한다. 그는 연민을 자아내는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라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준다.

흔히들 연애소설의 주인공은 연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오페라의 유령 없이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어지지 않지 않는가. (하물며 제목이 <오페라의 유령>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광기에서 우리는 공포를 느끼고,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서 미스테리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의 매력이자, <오페라의 유령>의 매력이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유럽여행을 마치며 생각이 났다. 나는 파리 오페라하우스-가르니에 궁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더 이상 가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가는 비행기에서, 여행하는 도중에 읽어놓고도 꼭 가보기로 한 곳을 잊어버리다니!

그래서일까, 돌아와서도 다섯 번은 더 읽은 것 같다. 그렇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아직도 위대한 사랑의 감동이 다가오며, 유령의 쓸쓸한 모습에서 연민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아직은 속물이라고 단정짓기에는 감수성이 남은 것 같아 다행인걸까.

인터넷 서점에서 '오페라의 유령' 을 검색해보자. 소설과 뮤지컬이 모두 뛰어나기에, 엄청나게 많은 상품이 올라와 있다. 그 중에 하나라도 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 구입하길 추천한다. 빌려서 읽어봐도, 들어도, 봐도 좋겠지만 이런 명작은 두고두고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nopi
책 이야기/소설2009.08.29 21:46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문이당.   (한국소설, ~ 2009.08.29.)

명백해진 사실. 나도 미쳤다.
-- 『아내가 결혼했다』中, p. 170.






뭘 얘기하고 싶은거야?

<아내가 결혼했다>는 발랄한, 그러면서도 대담한 소재의 이야기다. 평범한 남자 덕훈과 결혼한 매력적인 여인 인아가 펼치는 남성편력(?)과 환타지를 그려낸 소설이다. 그 과정을 축구라는 소재를 덧
붙이면서 표현을 해내는데, 어쩜 그리 재밌었는지. 가족과 결혼 제도라는 인간이 만든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부인에게 마지못해 모든 요구를 허락하는 남편을 보면서 실실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뭘 얘기하고 싶은거야? 그저 웃고 지내기엔 너무나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주인공은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을까? 유쾌한 이야기 뒤에 묻힌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사랑하되 독점하지 않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소설을 쓴 것인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아내가 결혼했다> 포스터. 물론 나도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은...



왜 주인공은 덕훈일까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인 덕훈이다. 아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자인 인아인데 말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무언가 자리잡은 것이란 말이다. 작가는 철저히 덕훈의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여성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 것을 버리고 남성의 시점에서 느끼는 것을 철저히 취한 것이다. 인아를 보면서 "맞아, 나도 그런 환타지가 있었어" 같은 동감, 이런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저런 여자는 싫어!" 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교활하게 유도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편견'을 심는 것이다. 어떠한 사실을 전달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각색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인아, 특별한 여자

덕훈의 아내 인아는 매우 특별한 여자다. 최고의 여자다. 술 잘 마시고 섹스 잘 하고 육아와 정리정돈, 요리에도 빠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돈도 그럴듯하게 잘 버는데다가 심지어 (한국에서) 아직까지는 남자의 영역이라고 일컬어지는 스포츠, 그 중에서도 격렬한 축에 드는 축구마저 좋아하는, '완벽한 여성' 아닌가!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보자. 인아같이 특별한 여자에게만 이런 환타지가 가능한 것 아닐까? 남자의 눈으로 보기에 최고인 여자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박히게 됨으로써, 파격을 가장한 보수성이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탈

덕훈은 마지막에 인아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게 된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달리듯 요구하는 모습, 아까 얘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기에 이 모습은 남자가 여자에 져서도 아닌, 그저 일탈이라는 모습을 비춰주기에 씁쓸하다. 단순히 가부장적 사고에 물들은 이 사회에 대한, 그런 남성들에 대한 복수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진지하게 든다.

심지어 이런 눈으로 쳐다본단 말이다.



가볍게, 다시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유쾌하지 않은가?

그럼 결국 작가는 그래봤자 여자가.. 라는 인식을 하면서 쓴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뛰어난 여성에게 당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은 근본적인 원인해소를 일탈로밖에 나타내지 못하는 억압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각오하면서도 썼던 이유는 가볍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남자와 여자가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비판적인 얘기들이 나왔을까? 아마도 남자가 주인공인 그런 소설이었다면, 작가는 가부장제 의식이 판에 박힌 꼴통이란 소리를 밑도 끝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의문을 가진 이야기, 독점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서 여자를 주인공으로 놓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을 무겁게 가지고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재기발랄한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었겠지만, 행간에 풍기는 느낌은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은 영화로 만들어진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주인공 역을 맡은 손예진의 말이 모든 것을 얘기한다. 두 남자 거느린 자유로운 삶이 부럽기도 하다고. 남자는 뭐 안 그런가.
http://jennifer-decker.tistory.com2009-08-29T12:11:540.31010
Posted by nopi
책 이야기/소설2009.05.27 02:05
안도현<연어>문학동네.   (한국소설, 2007.03. ~ 2007.08.)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믿는 이에게 바친다.

                                     -- 『연어』中




주인공 '은빛연어'는 고달픈 현실에 젖어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자신의 주변에서 생기는 많은 사고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을 은빛연어는 겪어나간다. 그럼에도 꿋꿋이 우리가 사랑을 하고 성장을 하듯이, 은빛연어도 일련의 과정을 겪는다.

이런 이유로 마냥 성장물이라고 하기에는 '연어'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설이다. 비단 시적인 표현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독자 모두에게 용기를 주려는 책이기 때문이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라는 구절로 소설은 시작을 하고, 끝을 맺는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연어에게서 강물 냄새가 난다니. 이는 고향을 찾는, 그리고 죽음에 다다르는 산란의 과정을 극대로 미화하는 것이다. 연어의 산란은 비단 산란 그 자체만의 의미일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의미한다. 폭포라는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좇은 꿈을 위해 뛰어넘는 연어를 보며 독자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 않을까.

<연어>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메마른 일상을 보내느라 자신의 인생을 둘러보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소설이라는 글로 표현한 응원이다. 오랫동안, 무려 100쇄 동안 이 책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Posted by no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