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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공포와 미스테리, 그리고 광기어린 사랑 - 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최인자 옮김
<오페라의 유령>문학동네.   (프랑스소설, 2006.06.26.)

"크리스틴, 당신은 나를 사랑해야 하오!"
그러자 슬픔에 가득 찬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흘리는 듯,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나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순간 라울의 심장은 영원히 멈추는 듯했다.
-- 『오페라의 유령』中, p. 54.


2006년이다. 첫 유럽여행인지라 가슴이 설레었던 것도 잠시, 어지간하면 그런 고민을 안 하겠지만 가격이 제일 싼 비행기 표를 구한다고 구한 항공편이 베트남 항공이었기 때문에, 유럽까지 가는 그 긴 시간동안 난 뭘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유럽여행 가는데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골랐던 책이 바로 이 <오페라의 유령> 이었다.

간만에 옛 생각을 하다보니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다시 읽어봐도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이야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공포 소설? 추리 소설? 연애 소설?

소설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 대체로 하나의 분위기만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하나의 '장르' 가 결정이 되면 그 소설은 '장르' 안에서 가지는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띈다는 말이다. 소설을 분류할 때 연애소설, 추리소설 같은 장르로 나누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런 점에서 모호하다. 이 모호함은 결국 여러 장르의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미스테리 소설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이었지만, 책을 덮고 난 후부터 누가 그런 소리를 했나 찾아서 때려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크리스틴 다에와 라울 샤니, 또다른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의 유령> 에서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그 중 둘이 바로 아련한 사랑을 나누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 다에와 그녀의 연인 라울 샤니 자작.

이 둘울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다른 연애소설과 같은 플롯을 지니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서로를 알아왔으나 현실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사랑임을 알고 슬퍼하는 모습, 그리고 강력한 반대에 빠진 그들의 사랑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나는 주저않고 크리스틴 다에와 라울 샤니를 또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소설은 정말로 다양하다. 그렇지만 비극적 스토리, 아름다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문호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두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련한 연애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


아름다운 두 연인의 이야기가 전부였다면 이 책은 아름답지만, 아주 특출난 소설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페라의 유령의 존재는 더욱 더 특별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소설은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인 모습을 보인다. 연애소설에다 공포와 미스테리가 적절히 섞인 듯한 이 소설은 결국 오페라의 유령에 의해 완성된다.

오페라의 유령은 연인의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꾼으로, 오페라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일들의 주모자로, 그리고 광기어린 사랑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미치광이로 등장한다. 그는 연민을 자아내는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라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준다.

흔히들 연애소설의 주인공은 연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오페라의 유령 없이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어지지 않지 않는가. (하물며 제목이 <오페라의 유령>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광기에서 우리는 공포를 느끼고,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서 미스테리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의 매력이자, <오페라의 유령>의 매력이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유럽여행을 마치며 생각이 났다. 나는 파리 오페라하우스-가르니에 궁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더 이상 가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가는 비행기에서, 여행하는 도중에 읽어놓고도 꼭 가보기로 한 곳을 잊어버리다니!

그래서일까, 돌아와서도 다섯 번은 더 읽은 것 같다. 그렇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아직도 위대한 사랑의 감동이 다가오며, 유령의 쓸쓸한 모습에서 연민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아직은 속물이라고 단정짓기에는 감수성이 남은 것 같아 다행인걸까.

인터넷 서점에서 '오페라의 유령' 을 검색해보자. 소설과 뮤지컬이 모두 뛰어나기에, 엄청나게 많은 상품이 올라와 있다. 그 중에 하나라도 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 구입하길 추천한다. 빌려서 읽어봐도, 들어도, 봐도 좋겠지만 이런 명작은 두고두고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