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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인문

딱딱한 철학책은 가라 (2)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2

 

정재영<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풀빛.   (서양철학일반, 2009.11.02. ~ 2009.11.07.)
정재영<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풀빛.   (서양철학일반, 2009.11.09. ~ 2009.12.06.)

모든 자물쇠를 다 열 수 있는 만능 키같이 모든 철학 문제를 다 풀 수 있는 만능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는 그것을 도그마라고 불렀다.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中, p. 279~280.

모든 이념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이 평범하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이념의 옷에 인간을 억지로 맞출 때, 이념은 괴물이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이 괴물의 노예로 전락한다.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中, p. 348.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도시를 디자인하다?


무슨 책의 제목일까. 겉으로 슥 보고 지나가기에는 한 때 유행하던 도시공학 서적이라 보일 수도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결국 철학책이다. 오히려 본문을 읽어보게 되면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도시를 매개삼아 철학여행을 떠나는 책이다. 오히려 '철학, 여행을 떠나다' 와 같은 제목을 붙여주고 싶지만 느낌은 조금 애매하려나.

어찌보면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그 도시에서 철학이 탄생한 것이지, 실제로 철학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는 없지 않을까? 실제로도 그렇다. 저자는 철학이 도시를 디자인했다는 공간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디자인함으로써 우리가 그 시간대로 빠져들게하는 역할을 함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아테네가 고대를 대표하고 피렌체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듯 말이다. 물론 도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결론은 공간적인 배경을 시간적인 배경으로, 저자가 탁월하게 전환한다는 것이다.


간략하면서 묘하고, 어려우나 재미있다.

묘하다. 중학교 도덕,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많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시간 순서대로 해설하고 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으로 현재서부터 시간을 거꾸로 올라감으로써, 현재를 지배하는 철학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찾아들어가고 있다. 생각의 뿌리를 거꾸로 찾아들어가는 기법은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대중적인 철학 책에서 쓰이는 것은 의아하게도 늦게 도입이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일까...

묘하다는 느낌을 시간적인 요소에만 한정할 수가 없다. 도시를 선정하여 그 시대의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거기서 철학자를 불러낸다. 그리고 한 철학자와 그 철학에 대한 설명이 모자라다고 생각할 때 저자는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뿐 아니라 저 멀리에서 연관된 사람들을 소환한다. 그래서 처음엔 간략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는 묘해질 뿐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진달까.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있다. 어려운데! 사실 이것은 주인장이 철학에 조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 아마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은 없고 재미만 남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지금, 당신의 철학을 되새겨보라.

철학의 뿌리는 무궁무진하다.


결과적으로 뿌리를 향해 찾아가는 기법 그 자체로 이 책은 목적이 분명한 책이 된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행의 최종 목표를 유럽 철학을 이해하는 데 두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정했다. 이제 물어보자. 목표는 이루어졌는가?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中, p. 512.


이 물음에 답을 해보자. 이 책은 저 물음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들려주는 것이다. 책 내내 상대적인 면을 지지하고, 절대화에 따른 오류와 선입견을 철저히 두려워하는 저자의 소견을 들을 수 있다. 맨 위에 뽑아 인용해놓은 두 문장이 그 답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이 물음에 자신의 답을 내놓아 보자.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생각이 뭔지, 자신의 철학이 뭐였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지기 십상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칸트 철학을 두고 생각의 물줄기가 모이는 저수지라는 표현을 쓴다. 이 책이 그토록 거대한 저수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당신의 생각, 그리고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현재의 철학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샘이 되리라는 것은 두 말할 것 없을 것이다.